백제의 고도 부여 여행기...국립부여박물관 궁남지 정림사지(2/2)

 

 

궁남지에서1

궁남지에서2

궁남지에서3

 

정림사지5층석탑1

정림사지5층석탑 2

정림사지5층석탑 3

 

2. 궁남지에서...

박물관 여행을 마치고 궁남지를 찾았습니다.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궁남지는 기록에 의하면 마래방죽이라고 부르던 늪지였던 곳으로 삼국사기의 기록을 기초로 궁남지로 부르고 있는곳입니다.  이곳의 유적은 '90∼'93년, '97년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수로와 관계된 유적이 연못 안에서 확인되었고 백제시대 목간과 새머리모양의 조각을 비롯하여 토기, 수막새 등도 나왔습니다.

궁남지가 만들어진 때는 634년으로 경주에 있는 안압지보다 40여년 앞선 것으로, 우리나라 인공연못으로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 최초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서동요로 유명한 백제 무왕이 조성한 것이라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는곳입니다. 현재의 연못은 1965년부터 3년간 복원한 것으로, 원래 규모의 1/3정도라고 하였습니다.

궁남지로 향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은은한 빛이 비쳐졌습니다. 그 은은한 빛은 궁남지의 연못이 얼어붙어 햇살을 반사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빛은 현석이 다솜이뿐 아니라 연못 주변에 빙 둘러 심어놓은 버드나무를 부드럽게 비춰주고 있어 연못 전체에 신비감이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가족은 못 주위를 따라 걷다가 연못 가운데 만들어둔 둥근섬과 그곳의 정자 포룡정을 둘러 보았습니다. 연못에서 포룡정으로 이어지는 길은 부드러운 굴곡으로 두어 마치 커다란 무지개가 걸려 있는 모습 같았습니다. 우리가족은 궁남지를 돌아보고, 몇장의 기념사진을 찍은후 정림사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3. 정림사지에서...

정림사지 5층탑은 익산의 미륵사지 탑과 더불어 단 두 개밖에 남아있지 않은 백제시대 석탑입니다. 국보9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석탑은 좁고 낮은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입니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탑을 보고 있을 때 스무명 남짓의 대학생들이 탑으로 다가왔습니다. 사학과 학생들이 현지학습을 나온 것 같았습니다. 탑을 보며 교수님의 상세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현석이와 다솜이에게는 좀 어려운 설명이어서 탑 주변에서 놀도록 하고 아빠, 엄마만 그 설명을 들었습니다.

목조탑 형식을 갖춘 석탑의 발전과 정림사지 5층 석탑의 비례에 대한 설명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림사지석불좌상의 설명도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불상보다 더 학술적 가치가 있는 대좌(불상을 안치하는 대)에 대한 이야기는 전문가의 설명이 아니라면 쉽게 둘을 수 없는 것이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이렇게 설명을 듣는 동안 해가 저물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가는 정림사지의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우리가족도 여행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현석이 다솜이는 정림사지의 잔디밭을 열심히 뛰어다녀 숨이 찬 현석이 다솜이 손을 잡고 정림사지를 빠져 나왔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찾아가지 못한 부소산, 능산리 왕릉, 백마강의 여행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여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에필로그>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님의 시 꽃의 구절처럼 잠자고 있던 백제의 이야기들이 들렸습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능산리 출토 금동대향로를 보면서 잊혀진 백제의 전설들도 그렇게 깨끗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보면 천년을 넘는 세월의 이야기도 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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